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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잊혀진감정들의도서

성인동화 그림자를 사랑한 남자의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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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사랑한 남자의 후회

옛날 옛적, 사람들의 그림자에서 그들의 가장 빛나는 가능성을 읽는 능력을 가진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의 맨 얼굴보다, 그 사람의 잠재력이 만들어내는 영롱한 그림자에 더 쉽게 매혹되곤 했습니다.

어느 날 남자는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궂은일을 하며 손톱 밑에는 늘 흙이 껴 있었고, 피곤에 지쳐 웃음기 없는 얼굴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자는 달랐습니다. 

그 그림자는 세상 모든 지혜를 담은 책을 읽는 학자였고, 때로는 별들의 노래를 악보로 옮기는 위대한 음악가였습니다.

남자는 여인의 현실 모습 대신, 그녀의 눈부신 그림자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는 여인의 지친 얼굴을 보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더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왜 그렇게 사소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나요?"

그는 여인의 흙 묻은 손을 보며 말했습니다. 

"그 손은 섬세한 악기를 다뤄야 해요. 막노동이 아니라."

남자는 현실의 여인이 아닌, 그림자에게 말을 걸고, 그림자에게 선물을 주고, 그림자와 미래를 약속했습니다. 

그의 애정과 기대를 받을수록 여인의 그림자는 점점 더 선명하고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황금빛으로, 무지갯빛으로 타올랐죠.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림자가 빛날수록, 현실의 여인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갔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아졌고, 걸음걸이는 힘을 잃었으며, 눈빛은 초점을 잃었습니다. 

그림자의 완벽함 아래, 현실의 그녀는 자신의 초라함을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존재는 자신이 아닌, '될 수 있었던 가능성'의 무게에 짓눌려 사라져 갔습니다.

마침내 어느 비 오는 날, 여인은 남자에게 아무 말도 없이 떠나버렸습니다.

남자의 방에는 오직 여인의 완벽한 그림자만이 남았습니다. 

그림자는 여전히 아름답게 미소 지으며 책을 읽고 악기를 연주했지만, 온기가 없었습니다. 

남자를 안아주지도,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지도 않았습니다.

남자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사랑한 것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이었음을. 

그는 흙 묻은 손으로 자신에게 따뜻한 수프를 끓여주던 여인의 온기를, 피곤한 얼굴로 가만히 자신의 어깨에 기대오던 그 작은 무게를 뒤늦게 그리워했습니다.

그는 평생토록 아름답지만 텅 빈 그림자와 함께 살았습니다. 

방 한편에는 늘 온기 없는 그림자가 춤을 추었고, 창가에 앉은 남자는 창밖을 보며 그림자를 사랑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곱씹고 또 곱씹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사람을 사랑할 기회를 놓쳐버린 한 남자의, 길고 긴 후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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