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망토를 입은 도시의 권태
세상 한구석에 '잿빛 망토'를 두른 도시가 있었습니다.
그 도시의 이름은 아이테르나(Aeterna), 영원을 뜻하는 이름이었습니다.
도시의 모든 것은 영원할 것처럼 안전하고, 예측 가능하며, 지독하게 평온했습니다.
날씨는 늘 똑같이 미지근한 박무(薄霧) 상태를 유지했고,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회색, 쥐색, 먹색의 옷만을 입었습니다.
음식은 배고픔을 없애줄 뿐 맛은 없었고, 노래는 소음이 아닐 뿐 감동은 없었습니다.
슬픔도, 분노도, 심지어 커다란 기쁨도 없는 곳. 그저 모든 것이 '있는' 상태로 존재하는 곳.
도시 전체가 거대한 '권태'라는 잿빛 망토를 뒤집어쓴 채 느리고 무겁게 숨 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완벽한 회색 도시의 한복판, 잘 닦인 보도블록 틈새로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주 작은 노란색 유채꽃 한 송이가 고개를 내민 것입니다.
그것은 도시의 법칙을 어기는, 이해할 수 없는 실수이자 오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그 작은 꽃을 멀찍이 피해 다녔고, 도시의 관리자들은 그 '오류'를 즉시 제거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도시의 낡은 기록을 관리하던 한 사서가 남몰래 그곳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매일 똑같은 기록을 정리하며 마음이 닳아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난생처음 보는 그 생생한 노란빛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습니다.
꽃잎에 손가락이 닿는 순간, 그녀는 까맣게 잊고 있던 감각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가 몰래 쥐여 주던 달콤한 꿀사탕의 맛.
그녀는 그날부터 매일 밤 몰래 물병을 들고 와 그 작은 유채꽃에게 물을 주었습니다.
꽃은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놀라운 일은 그다음이었습니다.
선명한 노란빛이 물감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꽃 주변의 보도블록이 희미한 상아색을 띠기 시작했고, 그 길을 지나던 사람들의 잿빛 옷자락에 레몬빛 물이 들었습니다.
노란빛에 물든 사람들은 이상한 병에 걸렸습니다.
어떤 이는 길을 걷다 말고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고, 어떤 이는 창가에 앉아 이유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잊었던 첫사랑의 이름이, 좋아하던 노래의 멜로디가, 간절했던 꿈의 조각들이 안개처럼 피어올랐습니다.
마침내 도시를 뒤덮고 있던 거대한 잿빛 망토가 낡은 천처럼 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틈새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고, 시원한 빗줄기가 내리고, 밤하늘엔 별이 빛났습니다.
사람들은 옷장에서 색색의 옷을 꺼내 입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진짜 표정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도시는 더 이상 안전하거나 예측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폭풍우가 몰아쳐 길이 망가지기도 했고, 사람들 사이엔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알게 되었습니다.
상처 입을 위험 없이는 위로의 따스함을 알 수 없으며, 실패의 쓴맛 없이는 성공의 기쁨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는 것을.
권태라는 잿빛 망토를 벗어 던진 대가는 혼란과 불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기꺼이 그 대가를 치르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살아있다는 증거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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