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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잊혀진감정들의도서

성인동화 유리병 속 나비를 배달하는 소녀의 설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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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속 나비를 배달하는 소녀의 설렘

감정의 도서관, 그 가장 환하고 따스한 구석에는 '설렘'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유리병들이 있었습니다. 

병 속에서는 저마다 다른 빛깔의 나비들이 날갯짓하고 있었죠. 이 나비들은 '곧이어 일어날 좋은 일에 대한 가슴 떨리는 예감'을 먹고 사는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이 나비들을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순간에 채집하여, 마음이 굳어버린 이들에게 배달하는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는 낡은 가죽 가방에 빈 유리병들을 넣고 세상을 여행했습니다. 

그녀는 해 뜨기 직전 성산일출봉의 짙푸른 어둠 속에서, 수평선 너머 첫 햇살이 터져 나오길 기다리는 연인의 숨결로부터 분홍빛 나비를 담았습니다. 

갓 구운 빵집 앞에서, 이제 막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아이의 반짝이는 눈동자에서는 노란빛 나비를 담았죠.

어느 날 소녀는 배달 의뢰를 받았습니다. 의뢰인은 단 한 번도 비뚤어진 선을 그려본 적이 없는 유명한 건축가였습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변수를 통제하려는 듯, 창문도, 정원도 없는 완벽한 회색의 네모난 건물만을 설계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닫힌 지 오래였고, '설렘'이라는 감정은 비효율적이고 불필한 버그 같은 것이라 여겼습니다.

소녀가 그의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공기마저 자로 잰 듯 답답했습니다. 건축가는 소녀와 그녀가 내민 작은 유리병을 의심스럽게 쳐다보았습니다.

"이게 뭘 어쩐다는 거요?"

소녀는 말없이 유리병의 코르크 마개를 열었습니다. 그러자 연분홍빛 나비 한 마리가 조심스럽게 날아올랐습니다. 

나비가 날갯짓할 때마다 금빛 가루가 흩날렸고, 삭막하던 사무실에 아주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비는 건축가의 귓가를 스쳤습니다. 

그러자 그는 잊고 있던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좋아하던 이의 답장을 기다리며 우체통이 덜컹거리던 소리.

나비는 그의 눈앞을 맴돌았습니다. 그는 잊고 있던 풍경을 보았습니다. 

소풍 가기 전날 밤, 내일은 날이 맑기를 기도하며 창밖을 내다보던 어린 시절의 밤하늘.

나비는 그의 굳게 다문 입술에 잠시 앉았다 떠났습니다. 그는 잊고 있던 맛을 기억해냈습니다. 

첫 월급을 받아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사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괜스레 입가에 맴돌던 달콤한 흥얼거림.

건축가의 잿빛 세상에 아주 작은 창문이 생긴 순간이었습니다. 그의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굳어있던 손이 떨렸습니다. 

그는 책상 위로 달려가 연필을 잡고는 난생처음으로 삐뚤빼뚤한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알록달록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과, 아무렇게나 자란 담쟁이덩굴이 있는, 정해진 규칙 없는 자유로운 집을 그렸습니다.

자신의 소임을 다한 나비는 한 줌의 빛가루가 되어 스르르 사라졌습니다. 

'설렘'은 영원히 머무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닫힌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와 같고, 잠든 마음을 깨우는 아침 햇살과도 같아서, 우리에게 다시 무언가를 기대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준 뒤에는 조용히 사라지는, 그런 반가운 손님이니까요.

건축가는 그날 이후 다시는 완벽한 회색 건물을 짓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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